[한겨레] [매거진 esc]
예술적 아름다움 더해가는 술병 디자인 …
소주는 왜 초록색 병일까
소주는 사실 투명한 물이다. 그런데 소주! 하면 반사적으로 ‘키야~’ 하는 소리와 함께 녹색 이미지가 따라붙는다. 왜 그럴까? 이효리, 하지원, 김태희 등 내로라하는 미녀 스타들이 들고 있던 소주병이 모두 녹색이라는 사실도 한몫한다. 몸에 알코올이 들어갈수록 술주정과 숙취라는 결과가 찾아오지만 얄궂게도 녹색 소주병은 산뜻하고 청명한 이미지, 딱 거기까지 우리에게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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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병을 장식한 샤갈, 앤디 워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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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맛을 시각화하는 술병 디자인은 시대에 따라 변화해왔다. 소주병도 처음부터 녹색이었던 것은 아니다. 1924년 출시된 최초의 소주병은 갈색의 두꺼운 몸통에 영특한 동물 원숭이 두 마리가 올라와 있었다. 50년대 부산 구포양조에서 생산된 ‘낙동강’ 시절엔 학이, 60년대엔 두꺼비가 올라와 있었다. 93년엔 ‘진로골드’가 출시되면서 병 어깨가 각진 형태의 연한 푸른색이 강조됐다. 98년 광고회사 크로스 포인트가 제작한 ‘참이슬’ 병은 패키지 디자인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성공 사례로 손꼽힌다. 최경원 디자인 평론가는 “진로의 고전적인 이미지를 로고에서부터 패키지까지 현대적으로 탈바꿈시켜 한국 소주의 전형을 만든 디자인”으로 ‘참이슬’ 디자인을 치켜세운다. 맑고 청초한 이미지와 소주를 결부시킨 사건, 이후 소주병 하면 녹색 병이라는 인식이 굳어졌다. 참이슬과 함께 녹색 병 바람을 일으켰던 ‘그린소주’를 출시했던 두산에서는 녹색 용기를 너무 많이 생산한 까닭에 새 라인인 ‘산소주’와 ‘처음처럼’도 녹색 병으로 출시할 수밖에 없었다는 웃지 못할 업계의 비화도 있다.
2008년 9월 출시된 ‘제이’도 여전히 녹색 병이지만 눈에 띌 듯 말 듯한 작은 디자인의 변화를 줬다. 어깨 부분이 기존보다 약 13% 정도 높아져서, 쫙 빠진 느낌을 주는 것. 병 높이는 21.5㎝로 참이슬과 같지만 병 지름은 61.2㎜로 참이슬(65㎝)보다 가늘다. 라벨 상표의 브랜드명도 ‘처음처럼’ 이후 일반화한 캘리그래피(붓글씨)를 사용하되, 물을 머금어 수묵화처럼 배어 나온 듯한 부드러운 느낌을 더했다.
대중적인 술인 소주와 맥주가 기존의 병 형태에서 조금씩 변화를 추구하는 편이라면 와인, 위스키 등의 고급 양주들은 끊임없이 예술을 향한 구애작전을 펼쳐왔다. 최근 산업 디자인의 거의 모든 분야에서 유행처럼 번진 아티스트와의 협업(컬래버레이션)에 주류 업계 디자이너들도 야심찬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명화를 라벨에 담은 ‘샤토 무통 로칠드’ 와인병처럼 예술적 오브제라는 이미지를 부과하는 예가 대표적인 경우. 하지만 최근엔 병 라벨에 인상주의풍의 그림이나 샤갈, 마티스 등의 인기 작가들의 작품을 넣어 라벨을 아름답게 치장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술병 디자인의 고전인 스웨덴의 ‘앱솔루트 보드카’는 종이 라벨이 붙어 있지 않은 투명한 병의 매력을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경우. 기존 술병과 달리 약병을 닮은 병 형태로 술병의 개념을 바꿔놓았던 ‘앱솔루트 보드카’는 앤디 워홀이 그린 ‘앱솔루트 와홀’(1985)을 필두로 아트광고 시리즈에 가장 적극적인 브랜드로 꼽힌다. 지난해에는 붉은색 스팽글로 술병 전체를 빛이 나게 감싼 ‘앱솔루트 레드 스팽글’로 세계의 눈길을 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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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을 단순히 목으로 흘러들어가는 물이 아니라 문화적 이미지로 만들려는 시도는 디자인 협업을 디자이너, 미술가, 만화가 등 무한대로 경계를 넓혀간다. 최근 명품 위스키 ‘시바스 리갈’은 엉뚱하면서도 고급스러운 의상을 만드는 영국의 유명 디자이너 알렉산더 매퀸이 디자인한 리미티드 에디션을 출시했다. 파란색과 붉은색의 뚜껑에 새겨진 문양이 매퀸의 옷에 담겨 있던 문양처럼 개성적이다. 1일 새롭게 선보인 임페리얼 15주년 스페셜 에디션도 유례없이 만화가 이현세씨와 협업해 새 디자인을 선보였다. 6개월의 작업을 통해 만화가의 손끝에서 펼쳐나온 용 문양은 임페리얼의 술맛이 추구하는 힘있는 남성성과 카리스마를 반영했다. ‘임페리얼’, ‘시바스 리갈’, ‘페리에 주에’ 등을 판매하는 ‘페르노리카 코리아’ 측은 “컬래버레이션 작업은 장기적으로 봤을 때 경쟁 제품과 차별화된 프리미엄 이미지를 구축할 수 있다”고 그 효과를 설명했다.
주류 업체인 ‘디아지오코리아’도 지난 5월 한국 시장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제품인 ‘윈저’를 세계적인 디자이너 고든 스미스가 디자인한 새 병에 담았다. 기존 커브 형태의 병 모양을 재해석해 몸통의 굴곡을 강조했다. 스코틀랜드를 상징하는 사자와 윈저 성이라는 전통적 아이콘을 그대로 두되 하단의 두꺼운 단과 어깨선으로 변화를 줬다. 최근 리뉴얼된 ‘시락’의 병 디자인도 심벌인 파란색 돌을 사람 손으로 일일이 그려 붙여 소수가 즐기는, 고급 술의 이미지를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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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 술병이라도 마셔야 제맛
하지만 예술적이고 혁명적인 디자인의 병이라고 해서 무조건 대중의 사랑을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국내 주류업체인 ‘국순당’ 디자이너 김어진씨는 “술병 패키지 디자인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마시는 술에 대한 이해”라고 말했다. 시각적인 파격으로 눈길을 끄는 것보다는, 술의 성분과 맛이 무엇인지 소비자들과 정확하게 커뮤니케이션하는 게 술병 디자인의 중요한 구실이기 때문이다. 몇 해 전 깔끔한 맛을 강조한 국순당 술 ‘별’의 패키지는 마치 음료수 병처럼 하늘색 몸통 위에 투명 필름을 붙여 가벼운 필체로 제품명을 써넣었다. “술병치고는 산뜻하고 귀엽다는 등 관심을 받았지만, 막상 소비자들에게 괜찮은 술이라는 인식을 주는 데에는 성공하지 못해 생산을 중단했다”고 설명했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하지만, 일단 대중에게 시각적 매력만으로는 어필할 수 없다는 게 술병 디자인의 특징인 셈이다. 술은 보는 게 아니라 마셔야 제맛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현시원 기자 qq@hani.co.kr
[출처 :한겨레 신문(http://www.hani.co.kr/arti/specialsection/esc_section/363499.html)]
술 디자인은 솔직히 많이 생각해 보진 않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술병도 디자인의 힘이라고 생각이 든다.
그 유명한 코카콜라 병도 병모양이 특허가 있을 정도니 술 병도 당연히 있지 않을까...
그 예로 "앱솔루트 보드카"는 자사의 술 병을 가지고 시리즈 광고를 만들 정도로 사람들에게 친숙한 느낌을 준다.
누구나 한 번쯤을 봤을 것이다.
진로제이 술 병은 그런 의미에서 정말 잘 만든 것 같다. 깔끔하게 쫙 빠진 모습이 술맛을 돋구는 것 같다.
기존 소주에 비해 살짝 위로 높아져서 마치 와인 병같은 느낌을 전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