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중토크①] 주진모 “백상예술대상 수상, 어머니도 끝내 눈물”
영화 '댄스댄스'로 데뷔한 지 11년 만에 생애 첫 최우수연기상을 받은 그는 "영화에선 왕으로 나와 술상만 받았는데 오늘은 이렇게 진짜 상을 받았다"며 감격해 했다.
그를 다시 만난 건 시상식 사흘 후. 서울 강남의 한 곱창집에서 만난 주진모는 "박카스 CF로 처음 돈을 벌었을 때보다 부모님이 더 기뻐하셨고, 어머니는 참았던 눈물을 보이셨다"고 말했다.
▶조인성도 "형 축하해"
'상복 없는 배우' '흥행을 피해가는 연기자'. 11년간 주진모를 따라다닌 수식어들이다. 1997년 패션 디자이너 하용수에게 발탁돼 '댄스댄스' '와니와 준하' '실제상황' '라이어' '무사' 등 여러 장르의 영화에 출연했지만 흥행 전패.
그나마 '해피엔드'가 위안이 됐지만 최민식·전도연의 빛에 가렸다. 가장 뼈아픈 작품은 역시 '무사'. 중국에서 8개월 동안 모래바람과 싸웠지만 개봉 3일째 되던 날 9·11 테러가 터져 공공장소에 사람이 모이지 않았다. "살다보면 이럴 수도 있구나." 어이가 없었다.
그런 주진모의 인생에 서광이 비추기 시작한 건 드라마 '패션 70'부터였다. 이 작품의 인기로 이동통신 CF 모델이 된 주진모는 이후 '미녀는 괴로워'로 굳히기에 들어갔고, 곽경택 감독의 '사랑'으로 꽃을 피우게 된다.
2006년부터 "여기서 밀리면 끝장"이라는 배수의 진을 쳤고, 대중들은 서서히 주진모란 이름에 밑줄을 긋기 시작했다. '상대 여배우를 띄워주는 연기자'라는 별칭도 슬그머니 자취를 감췄다.
-수상을 예감하지 못했나요?
"네. 그랬다면 좀더 그럴듯한 소감을 준비했겠죠. 수상 소감 말하는데 카메라 뒤에서 FD가 시간 없다며 계속 팔을 흔들더라고요. 결국 시간에 쫓겨 '감사함돠'라고 외치고 서둘러 내려왔죠.(웃음) 다시 봐도 정말 어색하더라고요."
그는 데뷔 전 하용수와 일할 때 신인상 후보에 오른 이정재를 응원하기 위해 백상 시상식에 와본 적이 있다고 했다. 연기자 지망생이던 그는 당시 객석에 앉아 "언젠가 저 무대를 빛내겠다"고 결심했고, 그 약속을 지키는데 무려 10년 이상 걸렸다고 말했다.
-'쌍화점' 동료들과는 통화 했습니까?
"유하 감독님이 가장 먼저 축하해줬고, 지효도 문자메시지를 보내줬어요. 인성이는 전화가 꺼져있었는데 새벽에 전화가 왔더라고요. '형, 진짜 잘됐다'고 하는데 '나만 받아서 미안하다'는 말이 입에서 맴돌아 대략난감했어요."
-남자라도 투 톱일 경우 은근한 경쟁심이 있지요?
"없다면 거짓말이죠. 개봉 앞두고 인터뷰할 때 간혹 상대방이 한 말 때문에 신경 쓰일 때가 있어요. 매스컴에서 자꾸 인성이와 저를 대립시키더라고요. '인성아, 네가 이런 말 했니?' '형, 진짜 이런 얘기 하셨어요?'라며 날카로워질 때도 있지만 거기까지죠. 몇 개월간 동고동락했는데 그런 몇마디 말 때문에 믿음이 깨지진 않죠."
▶데뷔 초 별명은 '주민수'
-가끔 의도가 왜곡된 기사를 볼 때 기분이 어떻습니까.
"예전엔 각을 세워 생각했는데 요즘은 둥글게 보려고 노력해요. 아, 이런 방향이 필요했구나 하고 넘어가죠. 크게 얽매이지 않아요. 그랗게 생각할 나이도 지났고요."
-성격이 조약돌처럼 된 건 언제부터죠?
"그건 제3자한테 물어봐야 되는 거 아닌가?(웃음) 아마 '미녀는 괴로워'부터였을 거예요. 데뷔 초에는 성질이 불 같다고 해서 별명이 '주민수'였어요.(웃음) 이쪽이 인지도가 낮으면 선배 대접도 잘 못 받아요. 한참 후배가 '진모씨'라고 부르면 속으로 욱 하지만 다 흡수했어요. 지금은 독기 품게 만든 그 사람들한테 오히려 고마워요."
-김승우·장동건씨한테는 한턱냈습니까.
"그저께 동건형이랑 승우형이 출연하는 뮤지컬 공연을 보러갔다가 간만에 모여 새벽까지 술을 마셨어요. 10년 동안 형제처럼 지내는 사이라 뻑적지근하게 축하를 받았죠. 근데 동건형이 레드카펫에서 넘어진 '구준표'가 더 화제가 돼 아쉬웠대요.(웃음)"
이들이 속한 야구모임 플레이보이즈는 1일 창단 이래 처음으로 사회인 야구리그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이날 마무리 투수로 등판한 주진모는 전날 과음한 탓에 대량 실점했다며 멋쩍게 웃었다. "그래도 타석에선 불방망이였어요. 4타수 3안타였으니까요."
-김아중·박시연·이요원·이보영 등 공연한 여배우들과는 안 친합니까.
"저는 그 친구들 휴대폰 번호도 몰라요. 그들이 먼저 알려주면 모를까 제가 먼저 번호 안 물어봐요. 괜히 거절 당하면 쑥스럽잖아요."
오늘의 주진모를 설명하는데 박카스 CF를 빼놓으면 섭섭하다. 당시 "한 게임 더"는 최고의 유행어였다. 그 시절 극단 유 3기 단원이던 주진모는 "원래 농구만 하기로 했는데 감독 눈에 띄어 주인공이 됐다"고 비화를 공개했다.
"원래 주인공 하기로 한 친구가 자꾸 NG를 내는 바람에 감독님이 저한테 기회를 준 거였어요. 그러고 보면 저도 운이 좋을 때가 있었네요.(웃음)"
주진모는 유인촌이 만든 극단 유(유 시어터의 전신)에서 연기를 꿈꿨다. '택시 드리벌' 같은 작품을 올릴 때 그는 입구에서 팸플릿을 팔거나 커튼을 열고 닫는 스태프로 일하며 무대를 동경했다.
-아직 헝그리 정신이 있습니까.
"그럼요. 쉽게 쉽게 일하면 꼭 결과가 안 좋아요. 스스로를 괴롭힐 수 밖에 없죠. '쌍화점'도 한 마디 대사를 위해 백 번도 넘게 연습했어요. 감독님도 '지금까지 알던 모든 걸 비우라'고 주문했고요. 저 스스로를 완전히 포맷한 영화였습니다."
http://news.joins.com/article/aid/2009/03/05/3326085.html?cloc=nnc